군자(君子) 성인지미(成人之美) 불성인지악(不成人之惡), 소인(小人) 반시(反是).

  군자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이루게 해주고, 나쁜 점은 조장하지 않는다. 
소인은 그 반대다.
- 공자, 논어 안연편에서

신지모루 구성원 관련하여 올해 초까지의 내 시각은 이랬다. 이 어려움 속에서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그러나 개개인의 역량, 그에 따른 성과, 향상 속도는 충분하지 않다.

다행히 회사가 성장해가는 점은 좋으나 업무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조직과 개인의 업무 수행 역량이 뒤따라 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우에 일반적인 대응은 적합한 사람을 새로 채용하고 미진한 사람은 내보내는게 아닌가 싶다. 한편의 다른 관점은, 내가 남에게서 보는 단점은 나의 단점인 경우가 많고 사람에게서 아니다라고 한 경우 후회가 남을 때가 많았다.그래서, 이런 종류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올해 초 직원 한명과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내보낼 무렵에 이런 깨달음이 왔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기를 쓰고 긍정적인 면과 기회를 찾으면서 왜 사람에게는 장점을 봐주지 않고 내가 가진 틀을 들이대고 강요하는가. 

잘 하는 점을 찾아서 키우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안했다. 지각을 하던 말던, 사고를 치던 말던 잘 하는 점을 먼저 헤아리니까 '계속 이 상황을 지속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덜 들게 되었고, 매출도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어서 개인적으로 편안하게 여름과 가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직원간에 생겼다. 내가 잘 못한 것에 대해 피드백을 안하니까 그들끼리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사람에 대한 모두의 책임과 한 사람의 모두에 대한 책임은 동등하다고 봐서 동료간의 적절한 긴장감이라고 봐서 좀 놔둬봤더니, 나는 열심히 하는데 누구는 안한다로 전이되더니 나는 뛰어난데 다른 사람이 안받쳐준다고 변이되고 결국은 일상적 불평 불만과 긴장이 되었다.

손바닥만한 회사에서 이런 꼴을 보자니 내가 돈 버는 지옥을 하나 더 만들었구나 싶고,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보지 못한 일들이라 그회사들 다닐때는 불평불만이었지만 이제 보니 정말 세련되어 있고 발전된 문화를 갖고 있었던거구나 싶었다.

11월부터 제대로 이 문제에 맞서야겠다고 결심하고 문제를 보기 시작하니까 문제의 다른 의미도 보였다. 이런 과정을 겪고 해결해 가면서 조직문화가 정착되어 가는거라고 생각하니까 문제 자체를 인정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또한, 이일을 겪으면서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서 명확한 아이디어가생겼다.

일단 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체험해 왔던 걸 적어본다.
1. 열심히 한다고 성과가 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하는 경우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2. 문제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만으로 해결되기 시작할 때가 많았다.
3. 일은 자기가 가야할 길을 아는 듯 하다. 따라서, 내 의지를 투사하기 보다 일의 흐름을 살피며 해야할 일을 해나갈 때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4. 생존과 관련하여 내가 할 수 있을 수 일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시야가 넓어져서 가야할 길을 본 때가 많았다.
5. 사람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대부분 옳았다. 틀린 경우에도 예의를 다한 경우 마무리도 좋았다.
6. 사람에게 아니라고 한 경우 거의 내 한계였다.
7. 회사가 커짐에 따라 그에 맞는 거래처와 사람을 만났다. 
8. 사람은 열심히 일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뜻한 시선과 기대를 보낸다면 많은 경우 성과를 냈다. 이럴 때가 가장 사업할 때 보람있곤 했다.
9. 이러해야 한다는 틀을 들이댈 경우 성과로 이어지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뜻을 품고 하는 일들에 그 뜻을 풀어내면 서서히 변해가곤 했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적었다.
10. 직원의 의사를 물어서 하는 일이 실수가 적었다.
11. 아이디어를 구할 때는 어떤 업무 절차나 틀, 또는 당위론에 맞추기 보다 뜻을 품고 널리 구하다가 갑자기 마음에 딱 드는 아이디어가 나타난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12. 업무에 대한 집중력, 애정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며 그에 따른 결과도 차이가 있었고, 장기적인 성장의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13. 하향식 성과 평가가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지 또는 최소한 옳바르게 평가 되는지에 대해서 강한 의문이 있다.
14. 수평적인 관계가 개인의 혹은 조직의 성장을 촉진하는 듯 하다.
15. 자기 결정권이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쭉 쓰다보니 결국 비전을 어떻게 설정하는가가 중요해 보인다. 비전에 대해 얘기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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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았다............ 스키피오는 이탈리아에서 한니발을 공격하는 대신 카르타고를 침략하여,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떠나 자신의 고국을 방어하도록 유도했다.
- p245, 로버트 그린, 전쟁의 기술

기보에서 보증을 받아 1억을 받아 양산을 진행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한숨 돌리긴 한 건데,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사업에서 1억이란 큰 돈이 아니다. 마음을 놓으면 곤란하다.

1년 남짓 간의 사업의 패턴을 보면, 닥치면 해낸다였다.즉, 사업이 어려워지면 지혜와 인내와 노력으로 헤쳐 나갔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라도 하는 게 어디냐라고 할 수 있지만, 한 1년 했으면 이제는 좀 수준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만히 되짚어 보면, 상황에 의한 어려움이 있고 그에 대한 대응의 연속이었다. 뭔가 고비가 생기면 힘을 내서 넘어가는 패턴이었다. 이걸 한 템포만 앞당겨 보고 싶었다.

병법은 도와 통하는 게 많다던데, 2가지 아이디어를 빌려오기로 했다. 전략적 차원에서는 대전략이고 방법적인 면에서는 배후기동작전이다.

대전략이란 당장의 승패를 떠나 거시적 안목으로 전쟁을 바라보면서 수립된 전략을 말하는데, 위에서 예로 든 스키피오처럼 두나라 사이의 오랜 반목과 증오를 고려할 때 단순히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쫓아내는 것으로는 전쟁의 종결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침략한 적을 놔 두고 북아프리카의 본거지로 바로 쳐들어간 정도의 감각이라고 하겠다.

신지모루에 대전략을 쓴다면 어떠하게 될까. 기존의 바이어를 통한 해외 시장 진출을 넘어선 마케팅을 구사하는 것, 독특한 인재 소싱 시스템을 만들어 보는 것, 플랫폼 기반의 비지니스 모델을 시작하는 것 등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당장 해외 시장 진출 건은 바로 실행해 볼 것이다.

배후기동작전은 보통 장군들은 군대의 정면을 튼튼하게 만든다는 관념을 이용해서 측면을 공격해 성공을 거둔 나폴레옹의 방법이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군의 측면으로 보낸 군대는 소규모였지만, 예상치 못한 적의 등장은 두려움과 충격을 주어 전투를 결정짓게 하였다.

그냥 해야 해서 하는 모든 활동은 정면 전투라고 생각한다. 의례해서 하는 것, 다하니까 하는 것은 아마도 신지모루는 안 할 것 같다. 재기 발랄하다랄까, 뭔가 감동이 있다랄까, 단순하지만 기와 혼이 숨쉰다랄까. 끊임없이 상식의 끝자락을 탐험해나가서 아이디어의 감동을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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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4월, 5월은 정말 이런 느낌이었다. 이런 일이 닥치면 힘들지? 이런 상황이면 괴롭지? 그래도 사업할래하고 옆에서 누가 계속 묻는 기분이랄까.

최근에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그 분이 살아오신 걸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게 됐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고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에 출마한 것이다. 그걸 보면서 꿈을 갖고 산다는 게 어떠해야 하는구나라는 느낌이 왔다.

정부 과제 하나 신청해 놓은게 3차까지 가더니 결국 지난 주 금요일에 발표났는게 안 됐다. 그나마 다행인건 주말에 기분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지금 벌인 일이 안되면 어떻할 거냐라는 질문이 생겼다. 그래서, 대답했다. 이건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의 자세에 대한 것이고 그렇다면 이번 한 생애 쯤은 끝까지 지켜가겠다.

어제 독일의 바이어로부터 1,000개에 대한 발주서를 받았다. 양산을 위한 자금도 기보에서 다음주 초에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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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운명을 지닌 채 걷는 것 같았으며, 지난 날의 삶이 지금 이 순간, 지금 이시험을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했다고 느꼈다. 나는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 했으며 실패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 P 326,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처칠.


어릴 때 처칠에 대한 전기를 읽은 소감은 독일에 대항해서 고래 고래 신경질 내고 소리 지른 고집쟁이였다. 미국이 참전하기 전까지 열세였고, 전쟁은 미국이 끝내지 않았냐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처칠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몇 권 읽었는데, 조금 생각을 달라졌다. 그런 열세인 상황에서도 승리에 대한 확신을 놓지않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승리로 이끈 것이야 말로 정말 위대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서도 상품이 시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적 이유야 그 때 뭘했고 무엇이 부족했고 그래서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내가 보는 시각은 이랬다. 현상은 전적으로 내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므로, 현재의 상황은 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월 이후에 한 시름 놓나 했더니 , 출시 지연과 함께 돈이 더 필요하게 됐다. 그 때 든 생각은, 아니 1월 정도의 도전은 일생에 대학 입시나 취업 정도인 것 같은데, 2달 만에 또냐싶은 게 좀 짜증이 났다. 그러다, 조금 생각을 달리 해서 '사업은 지속적인 도전 과정이다'로 인식을 전환해서 '그렇다면 받아주마'로 태도를 바꿨다.

그러면, 어떻게 받아주냐의 건이 있는데, 내가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의 근본적 사고 및 인식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였다.

2006년 말부터 내 사고의 주된 흐름은 '선택하면 이루어진다'였고, 그런 생각의 뒷받침 위에 이렇게 꾸려왔다. 그러던 것이 출시와 관련해서 잘 되지 않고, 뭔가 마음이 편치않은 것이 '왜 그럴까'라는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을 쫓다보니까, 이 사업이 봄이 오면 만물이 알아서 꽃 피듯이 번성해야지, 때가 어떻게 됐던 내가 물주고 거름주고 하면 된다는 식의 방식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래 목표가 집착이 된 것 같다. 다 놔 보자'는 생각으로,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기존에 해오는 방식의 대응을 않고 가만히 있어 봤다.

그러다 명상을 깊이 할 때, 출시 관련 목표를 떠 올려보니 아니다 다를까 그냥 둥둥 떠다닐 뿐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 없었다. 그런 상태였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집착이 강하면 그것의 반대방향의 힘도 같이 세지기 때문에 더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단학 교육 중에 명상을 하다가 '나는 그냥 숨쉬는 생명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크게 공명이 됐다. 사업의 성공이든 뭐든 내 실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거구나싶으니까, 내가 사업에 의미부여하고 있는 일들로 부터 내가 분리되면서 엄청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숨쉬고 사는 기분으로 살면 되지 뭐가 또 필요하겠냐.

그런 공(空)한 기분으로 이번 주를 시작하여 몸도 않좋은 터라 한 이틀은 최소한의 모드로 일하면서 도대체 사업을 해야되냐 말아야되냐를 생각했다.

수요일에 사무실에 나와 급한 것 처리하고 지환씨랑 '사업을 왜 하는걸까'에 대해 얘기를 해 봤다. 각자가 사업하는 이유를 나름 대로 쭉 댄 뒤에, '나는 사업하는 지금까지의 이유가 의미가 없어졌다. 실체가 아닌 것에 집중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면서 그럼에도 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런 문답 와중에 신지모루가 성장을 위한 큰 그릇이 되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고 뭔가 좀 느낌이 오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가 아이덱을 왜 해야할까? 그랬더니 지환씨가 거기에 우리가 중요시하는 에너지를 담으면 일맥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결론에 따라서는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에서 뭔가 해야할 이유는 있다는 감이 왔다.

목요일 아침에 간단히 운동을 하고 사무실에 오면서 이런 기분으로 사무실 지켜봐야 답이 아닌 것 같았다. 산이나 다녀오자 싶어서, 업무 접고 지환씨와 치악산에 올랐다. 예전에도 뭔가 알 풀리는 일이 있을 때, 산에 오르면 항상 좋은 답을 얻었다. 어쩌다 거리는 짧지만 가파른 능선을 정신 없이 오르게 됐는데, 정상에서 좀 쉬다가 내려오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냥 즐겁게 하면 되는거 아니냐. 뭐 큰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게 있겠는가. 그냥 신명나게 놀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느낌이 왔다. 그렇구나, 그냥 순수하고 창조하면 되는거구나. 그러면 공한 것과 통할 수 있겠구나.

내 생각엔, 열심히 하는 건 너무나 쉬운 것 같다. 그러나, 자기를 너머서는 어떤 일에 정말 열심히 해본 사람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한다는 건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고.
나는 열심히 한다는 것 보다, 유연하게 변하는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현상이 자신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면.

치악산의 정상을 보니까 마지막 비로봉을 앞두고 큰 내리막이 있고 다시 한 수백미터 쯤 올라야 했다. 지금 우리도 그 정도에 와 있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마치 블루마블에서 이길려고 세운 것처럼 그냥 즐겁게 세우고 이뤄볼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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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은 크레필의 윤석봉, 박기영 두 대표님을 찾아가 디자인과 기구 개발을 하기로 했던 날이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개발 시작한지 만 1년이 됐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그 날 오전에 대학원 수업이 있던가 해서 수원에서 올라오다가 크레필이 있는 의왕으로 계약서 초안을 갖고 찾아갔는데, 막상 체결을 하기로 했더니 두분이 의논한 결과 개발 리스크가 너무 커서 하기 힘들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알수 없지만, 이 사업에 대한 리스크는 내가 지는 거니까 부담 너무 갖지 마시고 일단 한번 만들어 보자고 해서 개발 계약을 체결하였다.

1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서 iDeck을 개발할 것인지 다시 물어 온다면, 1년 전에 내가 이 아이디어는 된다고 생각했던 이유를 다시 든다고 해도 전혀 손색없는 시장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성숙한 시장에서조차 USP가 뚜렷한 제품은 언제나 시장이 있었다.

지난 4월 8일에 PP를 해서 제품이 220개를 만들어서 100개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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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의 교회는 스스로의 발전과 잠재력을 추구하는 열성적인 학생들이 한데 모여서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확장하는 살아 있는 연구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p275, James Arthur Ray, The Harmony, 엘도라도)

말이 충분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영감이나 느낌을 말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그만큼 체회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난 교회에 안 다니지만, 위의 글이 와닿은 건 내 사업을 윗글처럼 하고 싶기 때문이다.

2009년은 무엇보다 재무적인 성공을 실현하는 한해로 하고 싶다. 내 생각에 우리가 의지하고 실행하면 돈도 쉽고 원하는 만큼 벌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한 시점에 이른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이점이 우리의 도전과제이고 훌륭히 수행해 볼 생각이다.

일단은 매출 30억과 순이익 12억을 달성하여 직원 1인당 인센티브 1억원 갖고가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 최근에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듯 당연히 논리적 배경 없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할 지 지금은 모른다. 다만, 딱 들었을 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하고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그 일을 해서 난 많이 성장했다, 보람됐다, 나 자신이 뿌듯했다는 기분이 들 만한 일이어야 하고 마침 회사의 성장 단계가 여기에 왔으니 목표로써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창업팀을 만들고 싶다. 모여서 며칠 궁리하면 아이디어가 나오고 빠르게 실행해서 시장의 피드백을 확인한 뒤 사업적 성공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팀을 만들고 싶다. 올해는 아이덱의 상업화를 통해 사업적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고, 그외 몇 가지 사업 아이템을 기획하고 실행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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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를 가게 되면서 확실히 갖춘 역량이 있다면, 아무리 시간적으로나 재무적으로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 발상와 실행력을 갖추게 된 점이라 하겠다.

앞글에서도 적었듯이 정말 12월 31일 오전까지 어떻게 돈을 구해서 가야할 지 몰랐기 때문에 어떻게 전시를 할 지 가서 뭘 해야 할 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일단 그 날은 뭔가 아이디어를 내야한다는 정도를 뇌에 입력하는 수준에서 끝내고 새해를 맞기로 했다. 새해가 밝아 오고 1월 2일 출근해서 죽 당장의 일을 하고 나니 4시 쯤 되었다. 역시 지환씨와 둘이 앉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이팟의 유명한 광고인 원색 배경에 흰색 아이팟과 이어폰을 낀 모델이 검정색으로 처리되어 춤추는 장면이 떠올랐다. 나도 이런 저런 전시회에 다녔지만, 그 많은 부스들 중에서 이 부스가 뭘 하는 곳인지 힐끗쳐다보고도 알아 차릴 수 있으면 된다고 싶었다. 1시간 만에 아이디어가 나오고 이걸 그래픽적으로 처리해 줄 부분에서 누구와 의논할까 싶었는데, 박영일 대표님이 생각났다. 바로 전화를 했더니 잠깐 들릴 수 있다고 해서 같이 모여 얘기를 했다. 전후 상황을 얘기 하고 부탁을 했더니 시간이 촉박해서 좀 부담스럽지만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하루 만에 작업을 해서 받았는데, 좋았다. 들어가야 할 텍스트를 다시 손보고 피드백하고 나니 1월 5일 월요일  오전에 완성 된 데이터를 받았다. 이 걸 갖고 킨코스에 가서 출력하려고 보니 대략 비용이 80만원에 육박해서 다시 근처 현수막 제작업체의 소개를 받아 신길의 대형 현수막업체에 가니 실사 출력을 하면 비용이 45만원 정도인데, 길이 2m 50cm 짜리를 들고가기도 만만치 않으니 18만원 정도로 현수막을 제작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현수막을 1월 6일 출발하는 당일 인수 받아 짐을 꾸렸다. 그런 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준비를 마치고 라스베가스로 날라가 도착한 첫날은 자고 다음 날 부스 설치를 했다. 다행히 양면 테이프로 붙여도 잘 붙어서 수월하게 붙였다. 그리고, 다음 날 전시와 상담을 할 텐데,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어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 지 아이디얼한 바이어를 그려보기로 했다. 한 2시간 의논하니까 ‘비전을 공유하는 성장 파트너’라고 답이 나왔다. 할 일은 더 있어 보이는데, 시간이 새벽 2시여서 일단 자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CES 첫날 아침에 준비를 마치고 있는데, 우리 앞쪽에 자리 잡은 말레이시아관에 나와있는 투자 유치 쪽 업무를 하는 vice president가 와서 ‘니들 아이디어가 좋은데, 미국에서 먹히기가 어려울 것 같다. 미국 차량의 대부분에는 카셋트 플레이어가 없다. 하지만, 아시아나 라틴 쪽에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요지의 얘기를 나와 나누고 갔다. 내공이 상당해 보여서 일단 명함을 나누고 감사하다고 한 뒤 얘기를 마쳤다.



CES 전시를 하면서 느낀 점은 첫째, 내 기획 의도를 대부분이 금방 알아보고 재미있어 하며 경쟁 제품 대비 장점을 쉽게 인지한다는 점이었다. 많은 사람이 아이폰을 쓰고 있었고 많은 바이어가 관련 제품을 다루고 있었다. 한국보다 강한 시장 반응을 보니까 기분이 좋았다. 둘째는, 미국 시장의 경우 주류급 디스트리뷰터로 부터는 카셋트 플레이어가 많이 줄어든 추세기 때문에 약간 망설이는 느낌을 받았고, 틈새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을 가진 온라인 스토어의 마케터나 운영자는 아이디어에 매우 재미있어 했다. 미국의 차량 트랜드가 매우 빨라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셋째는, 남미 쪽 관심이 대단하였다. 멕시코, 브라질 등 남미에서 온 바이어나 플로리다에서 그 쪽 비즈니스를 하는 바이어는 큰 흥미를 나타냈고,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샘플을 받고 싶어 했다. 넷째, 유럽 시장도 꽤 좋을 것 같다. 스페인 쪽 바이어를 여럿 만났는데 큰 흥미를 나타냈고, 독일은 애플의 공식 디스트리뷰터나 샘플 오더를 2천개 낼 수 있냐고 물은 대형 바이어 등 매우 큰 관심을 보였고, UK도 그에 못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쪽은 각각 한 사람씩 만났는데 그 만큼의 흥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섯째, 아시아쪽의 잠재성에 대해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싱가포르와 두바이는 꽤 큰 흥미를 보였다. 이 쪽 바이어가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첫날 일본의 대형 유통 업체인 산와의 담당자와 남미 쪽으로 팔아보고 싶어하는 플로리다 바이어를 만난 후 기분이 매우 좋았다. 여기 온 보람은 충분히 있겠구나. 그러면, 대견스러운 자신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로 토요일 밤에 ‘Jubilee’를 보기로 하고 예매했다. 둘째날은 피크였다. 명함을 50장 정도 받은 정도 성황이었고 잠재적 바이어를 많이 만났다. 그 말레이시아 VP한테도 ‘당신의 조언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얘기도 한 것 같다. 셋째날이 약간 분위기가 달랐는데, 내 기분도 체력적으로 힘든 걸 느꼈고 오는 바이어의 수와 그 내용이 다소 달랐다. 그래도 내가 원한 유럽쪽의 유력한 바이어와 상담을 하게 되서 꽤 괜찮았다. 마지막날은 뭔지 모를 무거운 기분이 들고 저녁에는 내가 뭔가를 겁낸다는 걸 느꼈다. 아울러, 몇 몇 유력한 바이어를 만났지만 쇼 전체의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저녁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아마도 한단계의 일을 마치고 다음으로 나가야 할 때 느끼는 그런 느낌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아울러, 좋은 한국의 기업가들도 많이 만났는데 모두 사업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었다. 나와 유사한 일을 한 선배들의 경험을 아낌 없이 들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큰 경험이었고 큰 자산이었다.

CES에 참가하느라 비용은 대략 1,250만 정도와 1주일 간의 시간, 그리고 2명의 인력이 투입되었다. 스타트-업하는 기업에게는 적지 않은 자원이 투입되었다고 하겠지만 나는 매우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 자신이 생각하는 시장의 반응과 실제의 반응 사이의 갭을 알고 수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 경우 막연히 미국이 제일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유럽, 남미 및 아시아에서 큰 수익을 거둘 것 같고, 미국의 경우 니치 마켓에 효율적으로 접근할 채널부터 시작해 점차 전국 규모의 유통으로 나가야겠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둘째, 국내에서 접근하기 힘든 시장을 한번의 전시로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CES의 경우, 미국 서부의 바이어가 제일 많고 그 외 지역이 일부 있으며 유럽, 남미 및   아시아에 채널을 갖게 되었다. 어떤 지역에 진출하고 싶으면 그 지역의 전시회에 가는 것이 가장 좋아 보인다. 셋째, 벤처에게는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역량 확보의 기회이다.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갔다와야 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한차례 더 확장시킬 좋은 기회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제 국내와 국외 팔 곳을 어느 정도 갖게 되었다. 이제 발굴은 거래처와 좋은 관계를 발전시켜가도록 하면서 상품을 완성도 있게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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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있을 때 난 대공 미사일 시스템의 전자정비하사였다. 시스템이 필요한 전투 준비 상태를 유지하는 게 내 책무였는데, 그 상태를 유지 못한다는 건 고장이 났다는 것이고 그 건 내가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 일을 하면서 참 힘들었던 건 아무리 어려운 고장이 나서 고치는데 아무리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장비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고장은 참 고치기 힘들다. 나 같은 경우 한달을 꼬박 매달려 (꼬박이라 함은 밤샘을 동반한 전적인 몰입을 말함) 장비를 고친 경험도 있다. 그 때는 몸도 마음도 극도로 지쳐서 누가 고쳐만 준다면 뭐든 하겠다는 자세가 된다. 포기할 수 없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내가 올 여름에 벌인 일이 뭐가 있느냐 하면 CES에 가는 것이다. 서울통상산업진흥원에서 지원해서 가는 것으로 450만원의 참가비가 들었는데, 신청한 게 되서 등록하겠냐고 물어오길래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는 여차하면 안 가도 되지 하는 백도어가 살짝 열려 있는 상태였다.

11월 말에 들어서면서 이젠 결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북킹도 해야하고 갈 준비도 해야한다. 여행사에서 북킹하겠다고 할 때도 백도어를 살짝 열어둔 상태에서 일단 하시라고 하고 또 한 보름쯤 지났다.12월 중순이 되고 슬슬 결재 시점이 가까워 오고 있기 때문에 결정해야 했다. 어떻해야 할까. 11월 말부터 회사가 일시적 자금 부족 상황이 됐기 때문에 쉽사리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환씨와 이 얘기를 하다가 굳이 우리 돈 만 갖고 갈 필요는 없지 않냐라는 얘기가 나왔다. 어쩌면 CES에 자신들의 상품을 전시하고 마케팅 하는 것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회사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럴싸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회사가 있을 지 아는 대로 전화를 돌려 봤다. 그랬더니 다들 관심 있어 하는데,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해 의문스러워 했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결과가 안 나오니까 약간 의기소침해져서 어떻게 할까 싶었다. 딱히 어떻게 해야겠다는 모르겠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도전했는데 안 됐고 기죽어서 슬그머니 포기하는 패러다임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또 둘이 앉아 궁리를 했다. 부스 공간을 이용해서 마케팅을 대신해주겠다는 건 더 곤란하다고 결론지었다. 우리의 고객이 만족할 만큼 몰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CES에 대한 기사를 써서 IT 잡지에 기고를 해서 비용을 얻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바로 실행을 해 봤는데, 요즘 IT 잡지들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소시적에 즐겨보던 잡지 중 폐간한 게 수두룩했다. 상황이 이러냐..

또 둘이 앉아 궁리했다. 그랬더니 지환씨가 정면 승부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신문사와 얘기하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 해보자. 그러러면 뭔가 이야기꺼리가 되야 되는데, 뭐가 좋을까. 둘이 앉아서 ‘1인 기업 사장, CES에 도전하다’는 식의 이야기 구조를 하나 만들었다. 그래서 연락해 보자고 전화를 했더니 대형 주간잡지 편집장과 연락이 되었다. 그러면서 담당 기자 연락처를 받고 메일을 보냈더니 이야기가 재밌겠다며 실어보자고 하는데 애초 우리가 원했던 출장비 마련은 좀 어려워보였다.

또 둘이 앉아 생각해 봤다. 그 만한 잡지에 기사가 실리는 것 만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는데, 패를 버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출장비는 따로 알아보자고 결정했다.

어떻게 갈지 모르는데, 가야하는 큰 이유를 하나 더 보텐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다 문득 떠 오른게 카드로 결재하면 당장 돈을 내 보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여행사에 문의하니까 가능하다고 하고 한도 체크를 해 보니까 한명 정도는 보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 한명 정도라도 보내는 게 어디냐하고 정리할 수 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둘이 다 갈 수 없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든 생각이 CES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 혹은 한 사람이 가도 되고 둘이 가도 된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머문다면 그냥 살기위해서 사업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꿈을 이루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역시 그렇다면 둘이 가야했다.

여행사에서 결재 때문에 전화가 왔다. 사정 얘기를 하고 한 사람꺼는 카드로 결재하고 남은 한 명은 2월에 결재하도록 부탁했다. 우리 사정이 이러니 가능하면 들어달라고 얘기를 한 것이다. 그랬더니 고맙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둘이 라스베가스로 날아가고 있다. 가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분명 재미있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다음편에는 CES를 어떻게 준비하고 참가해서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올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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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한 현금을 다 쓰게 될 것이라는 걸, 이미 10월에 예상했고 11월 말에 구체적으로 드러났으며 12월에 현실로 마딱드리게 됐다. 꽤 어려운 상황일 수 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업을 하면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잘 다룰 수 있어야 하며, 오히려 사업이 커지기 전에 능력을 키울 좋은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을.

사실 이런 일은 지난 6월에도 겪었었다. 지난 4월에도 자본금으로 시제품조차 다 완성 시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을 벌였고, 실제로 6월에 겪었으며 7월에 문제를 해결하였다. 사실 그때는 기보에서 돈을 빌리면 될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되야 될 일이 실제로 되느냐 안 되느냐의 게임이었다. 그 때와 다른 12월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점은 줄곧 확신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이 상황을 돌파할 것이라는 걸.

이 일을 맞으면서 취한 태도는 이렇다. 사업에 의해 발생한 필요임으로 사업 자체의 매력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아울러, 돈이 안들어 오면 어떻하나 식의 상상이나 기분을 안 가지려 했고 허둥대며 되는 대로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항상 쾌활하고 명랑하게 상황의 해결을 확신하고 그 속에서 나는  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생각했다.

먼저 시도한 일은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었다. 먼저 이 상품의 판매권을 요구한 회사에게 일정부분의 권리금을 11월 24일의 협상 과정에서 요구했으나 회사 사정 상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하여 다른 조건들을 바기닝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경험상 협상 과정에서 내 필요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실현될 확률도 낮고 장래의 관게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지금 충족되지 못한 이 필요가 원동력이 되서 다른 가능성으로 나를 이끌어 줄 것임을 느꼈고 쌍대원리처럼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사실은 동격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이전에 사촌 형님의 소개로 알게 된 사장님께 투자를 요청하였으나 그 회사가 다른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고 제안을 철회하여 그 쪽이 모양새 좋게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였다. 전 직장의 인연으로 안 회사에도 제안을 했는데, 막상 투자를 앞둔 상황에서 주저하였다. 내가 하는 일을 전부터 알던 분에게도 제안을 하였으나 투자를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내가 정확히 원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지만 다른 성과도 많았다. 만일 이 없음이 없었으면 굳이 찾아가 투자 세일즈를 안 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 없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서 다시 한번 만났고 내가 하는 일을 알렸고 좋은 사람들을 새롭게 만났으며 앞으로 상호가 기회를 만들어 낼 확률을 높였다. 그리고, 이 살려고 하는 몸부림의 부산물로 국내의 주요 아이팟 악세사리 업체와 미팅을 하여 판매 제안을 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이런 활동들을 하고 나서 어떻게 해 봐야 하나 생각하다가 일단 이 상황을 기보와 의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얘기를 해 보니 개발자금을 한 번 더 내주는 건 어렵고, 향후 양산을 위한 운전 자금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앗, 그렇다면 지금부터 쭉 미래에 돈이 없는 상황이  3월 부터는 돈이 들어들어 올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새벽이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개발을 완료시키고 주문을 받기만 하면 되는구나.

그리고 나서 금형 개발 업체를 찾아갔다. 당장 계약금을 주고 개발을 시작해야 하는 것도 있고 아울러 기존 계약금의 잔금 지불 시점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야 했다. 일단,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숨길 것 없이 현재의 상황과 사업의 가능성과 리스크에 대해 쭉 얘기를 했다. 그리고, 지불 시점을 좀 연기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고맙게도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와~, 어쨌거나 중단 없이 개발을 계속할 수 있겠구나.

상당히 많은 일이 진척됐음에도 여전히 2월까지 쓸 자금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나 살펴보니 900만원 정도는 어떻게 스스로 빌려 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호라~, 최소한 생존 모드는 유지 가능하겠구나.

그래서, 500만원을 일단 빌리고 나머지 400만원을 빌리려고 하니 그 금융기관에서 게약 만료에 의해 어렵겠다고 한다. 이건 또 뭐냐. 일를 더 크게 벌리라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다짜고짜 중진공에 찾아갔다. 사업계획서를 놓고 그간의 일들을 쭉 얘기하고 오천만원만 빌려달라고 했더니 심사를 하자고 했다. 아~ 이제 살았다. 신청서를 제출해 놓고 최소한 6월에 해 봤던 패턴 정도로 일이 단순한 되고 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같이 있는 친구에게 500만원 만 빌려달라고 했더니 빌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12월의 이슈들이 정리 되었고 설날이면 개발 완료와 초기 생산 수량 만큼의 자금이 확보 되었다.

막상 쭉 쳐보니 그냥 담담한 일들인가 싶기도 한데, 사실은 이 한달 남짓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내가 해 봤다거나 최소한 이렇게 해야겠다는 아이디어 조차 11월 말까지 없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허둥대지 않고 나름대로 흐름을 타면서 즐겁게 이슈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왔다. 자신을 가지면 이젠 왠만한 일들은 헤쳐나갈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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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가 7년간의 갈리아 정복 기간의 마지막에 킨게토릭스를 중심으로 갈리아 부족들이 뭉치면서 대규모 전투를 벌어졌는데, 그게 알레시아 공방전이다. 이 전투를 앞두고 카이사르는 군단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7년간의 전쟁의 승패가 오늘 하루에 달려있다."

힘들다 싶은 순간에는 이순신 장군이 올돌목에서 전투하신거나 카이사르가 알레시아에서 7만 군단병으로 30만명을 맞아 어떤 마음가짐으로 전투에 임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것에 비하면 사업한다는 건 매우 제한적이며 작은 위험에 불과한데도 마음이 어수선하니 말이다.

제품 개발이 막바지이다. 사업의 구조도 좋아져서 국내 최대 유통사인 D테크와 미팅을 해서 판매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으니 국내 유통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해외쪽도 샘플 오더를 받았다고 봐야 할 것이고. 제조에 있어서 U사와 협력하기로 해서 나로서는 좋은 선택이 되었다. 이제 제품의 완성도를 높여 개발을 마무리 짓는 일과 회사에 돈이 들어오는 일 만 남았다.

돈이 개발을 마치는데 7천만원이 필요하고 대략 영업을 하려면 1억 2천만원 정도 필요할 것 같다. 인연이 되는 대로 투자를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제도권 금융에서 빌릴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직 시도해 보진 않았다. 

어제 '부자 멘토와 꼬마 제자'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든 생각이
-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변해야 한다는 뜻일 수 있다.
- 이 상황에서 나를 누르는 암시가 뭘까를 보자
- 얼마나 믿고 기다리느냐...
- 일이란 즐겁게--> 어떻게 즐길 지를 고심하자
인데,

* 지금 회사가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만히 느껴보면
- 나 자신의 힘을 과소 평가하고 자꾸 밖에서 돈이 들어와야 한다고 좁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그에 따라 상황을 현실보다 어렵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 돈을 구하는 건 없다는 것의 다른 식의 드러남인데, 그러기 보다 기회를 만든다는 관점에서 뭔가 즐기면서 할 거리를 찾아서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 일단 아이덱은 이미 대히트 모델이 되도록 결정되어 있다. 따라서, 금번에 돈이 들어오는 것도 그에 맞춰 회사를 더 큰 기회로 함께 나갈 수 있는 형태로 들어올 것이다.
- R= f (Vision, Concetration, thankfullness) 공식에 대입해보자.

1. Vision
- 목표: 12월 내 1억 2천만원의 현금 유입
- Why ?
a. 아이덱의 상품의 우수함을 소비자에게 전한다.
b. 아이덱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여한 모든 사람의 꿈과 보람을 실현시킨다.
c. 신지모루가 인간성 실현의 본보기가 된다.

2. Concentration
- VD를 한다.
a. 돈이 들어 온 상황: 수표로 찾기. 통장입금. 결재하고 전화. 축하파티
b. 아이덱이 눈부시게 팔리는 모습
c. 대량 매출이 일어나는 모습
d. 어떤 행동을 취해나가야 할 지 전지자와 미팅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한다.
e. 이 상황이 더 큰 성공으로 가기 위한 변곡점이 됨을 믿고, 즐겁게 한가지씩 이루어 간다.

3. Thankfullness
a. 시간/돈/자원의 넉넉함을 감사하고 표현한다.
b. 두려워서 쫓기기 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데 마음을 쓴다.
c. 나 자신의 자신감과 안정감이 주변에 퍼질 수 있도록 한다.
d. 나 자신의 생명력과 힘을 믿는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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