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있을 때 난 대공 미사일 시스템의 전자정비하사였다. 시스템이 필요한 전투 준비 상태를 유지하는 게 내 책무였는데, 그 상태를 유지 못한다는 건 고장이 났다는 것이고 그 건 내가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 일을 하면서 참 힘들었던 건 아무리 어려운 고장이 나서 고치는데 아무리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장비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고장은 참 고치기 힘들다. 나 같은 경우 한달을 꼬박 매달려 (꼬박이라 함은 밤샘을 동반한 전적인 몰입을 말함) 장비를 고친 경험도 있다. 그 때는 몸도 마음도 극도로 지쳐서 누가 고쳐만 준다면 뭐든 하겠다는 자세가 된다. 포기할 수 없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내가 올 여름에 벌인 일이 뭐가 있느냐 하면 CES에 가는 것이다. 서울통상산업진흥원에서 지원해서 가는 것으로 450만원의 참가비가 들었는데, 신청한 게 되서 등록하겠냐고 물어오길래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는 여차하면 안 가도 되지 하는 백도어가 살짝 열려 있는 상태였다.

11월 말에 들어서면서 이젠 결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북킹도 해야하고 갈 준비도 해야한다. 여행사에서 북킹하겠다고 할 때도 백도어를 살짝 열어둔 상태에서 일단 하시라고 하고 또 한 보름쯤 지났다.12월 중순이 되고 슬슬 결재 시점이 가까워 오고 있기 때문에 결정해야 했다. 어떻해야 할까. 11월 말부터 회사가 일시적 자금 부족 상황이 됐기 때문에 쉽사리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환씨와 이 얘기를 하다가 굳이 우리 돈 만 갖고 갈 필요는 없지 않냐라는 얘기가 나왔다. 어쩌면 CES에 자신들의 상품을 전시하고 마케팅 하는 것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회사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럴싸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회사가 있을 지 아는 대로 전화를 돌려 봤다. 그랬더니 다들 관심 있어 하는데,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해 의문스러워 했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결과가 안 나오니까 약간 의기소침해져서 어떻게 할까 싶었다. 딱히 어떻게 해야겠다는 모르겠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도전했는데 안 됐고 기죽어서 슬그머니 포기하는 패러다임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또 둘이 앉아 궁리를 했다. 부스 공간을 이용해서 마케팅을 대신해주겠다는 건 더 곤란하다고 결론지었다. 우리의 고객이 만족할 만큼 몰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CES에 대한 기사를 써서 IT 잡지에 기고를 해서 비용을 얻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바로 실행을 해 봤는데, 요즘 IT 잡지들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소시적에 즐겨보던 잡지 중 폐간한 게 수두룩했다. 상황이 이러냐..

또 둘이 앉아 궁리했다. 그랬더니 지환씨가 정면 승부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신문사와 얘기하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 해보자. 그러러면 뭔가 이야기꺼리가 되야 되는데, 뭐가 좋을까. 둘이 앉아서 ‘1인 기업 사장, CES에 도전하다’는 식의 이야기 구조를 하나 만들었다. 그래서 연락해 보자고 전화를 했더니 대형 주간잡지 편집장과 연락이 되었다. 그러면서 담당 기자 연락처를 받고 메일을 보냈더니 이야기가 재밌겠다며 실어보자고 하는데 애초 우리가 원했던 출장비 마련은 좀 어려워보였다.

또 둘이 앉아 생각해 봤다. 그 만한 잡지에 기사가 실리는 것 만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는데, 패를 버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출장비는 따로 알아보자고 결정했다.

어떻게 갈지 모르는데, 가야하는 큰 이유를 하나 더 보텐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다 문득 떠 오른게 카드로 결재하면 당장 돈을 내 보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여행사에 문의하니까 가능하다고 하고 한도 체크를 해 보니까 한명 정도는 보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 한명 정도라도 보내는 게 어디냐하고 정리할 수 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둘이 다 갈 수 없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든 생각이 CES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 혹은 한 사람이 가도 되고 둘이 가도 된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머문다면 그냥 살기위해서 사업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꿈을 이루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역시 그렇다면 둘이 가야했다.

여행사에서 결재 때문에 전화가 왔다. 사정 얘기를 하고 한 사람꺼는 카드로 결재하고 남은 한 명은 2월에 결재하도록 부탁했다. 우리 사정이 이러니 가능하면 들어달라고 얘기를 한 것이다. 그랬더니 고맙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둘이 라스베가스로 날아가고 있다. 가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분명 재미있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다음편에는 CES를 어떻게 준비하고 참가해서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올려 보겠다.
Posted by Ch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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