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쯤, 한무리의 대학생들이 자기들 공부 삼아 사무실을 다녀간 뒤 그 프로젝트의 발표를 들었는데, 그 친구들의 신지모루에 대한 환경 분석 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뭔가 장점으로 내세울 건 애플의 라이센시 계약을 맺은 거고, 걱정스러운 건 대표가 미래에 대한 전략이나 차기 제품에 대한 구상이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럴 듯한 얘기를 하나쯤을 했어야 했나는 기분도 들고 한편으로는 꽤 오랬동안 아는 척 해오는 습관을 이렇게 빨리 버렸나 아니면 그 척하는 게 쉽사리 간판되는 그런 기성 세대가 된 건지 약간 헤깔리면서도 태연한 척 듣고 있었다.

어쨌거나 최근의 내 태도는 목표는 설정하는게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라는 관점이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목표를 잡거나 아이디어를 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작년 한해를 특징짓는다면 어깨에 힘을 좀 뺐다가 아닐까 싶다. 09년을 1월 부터 12월까지 쭉 마음속으로 흘려보면 다양한 느낌이 올라오는데, 나름 파란만장했던 것 같다. 1월에 CES 갔다오니 엄청 고양되어 있다가 2,3,4,5월에 라이센스와 개발 문제로 삶은 시레기처럼 힘 쭉 뺐다가 6,7,8월에 첫 출하시키고 와 좋아라 했다가 9,10,11월에는 거의 시레기가 죽이 된 상태로 보냈다가 12월에 미국으로 물건을 보내면서 일 좀 했던 것 같다.

펀드 매니저가 원숭이를 이기지 못했다는 이야기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안다고 했던 일들이 그냥 놔뒀던 것보다 나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 많은 삽질 속에도 신지모루가 살아 있는게 기특할 뿐이다.

올해의 행동 지침은 보이는 만큼 하겠다이다. 보이는 만큼 몸을 움직이겠다. 그리고, 답을 구하고 싶은 건 신지모루의 뜻을 하나 세우고 싶고, 그 뜻을 제품으로 구현하는 컨셉을 만들고 싶다.

Posted by Chia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