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는 이번을 포함해서 3번 갔다. 첫번째는 군대 제대하던 해 1월 1일 소백산 올라가려다 눈이 와서 부석사와 소수 서원 둘러보고 왔었고, 두번째는 직장 생활 2년차 초에 뭔가 안풀리는 것 같고 힘들어서 들렀었고, 세번째는 이번에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모두 겨울이나 그쯤 이었다.

부석사는 뭐니 뭐니 해도 무량수전을 등지고 내려다보니 경치가 예술이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최순우. 부석사 무량 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처음 그자리에 서서 내려다 본 날에 눈이 쌓였는데, 아래로 산맥들이 눈을 덮어 쓰고 파도 밀려오듯이 내달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4시 전쯤에 도착해서 무량 수전에 한 30분쯤 들어안아 있다가 나와서 1시간 30분쯤 해지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도 많아 붐볐는데, 나는 그 와중에도 때 되면 한 말씀 내려주겠다는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무량 수전 앞 뜰에서 나무들이 바람에 몸흔드는 소리, 산맥의 꿈틀거림, 구름의 처연한 장난을 보고 듣고 있었다.

그러다 해가 거의 넘어가서 이제 높은 하늘만 밝을 쯤에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문득 느꼈다. 내 마음도 구름처럼 풀어야겠구나. 그즘에 마음이 좀 우는 느낌이 들어서 이상하다 했는데, 아마도 풀고 싶어서 그랬나보다. 한 얼마간을 바람에 풀고 내려오면서 용서한다고 말했다.

사업하면서 자각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고3 무렵에 '하면된다. 반드시 해낸다' 습관이 든 이후로 한 10년 남짓을 이 습관으로 살다가 작년 이 맘 때 쯤에 긍정을 선택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한 5년은 이걸로 살겠지 했는데, 왠걸 그 다음해 2월에 새로운 형태의 도전이 와서 적잖이 놀랐었다.

사업하면서 깨닫고 싶다고 하면 정말 돈독이 올랐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동 알대에서 농사짓는 향사로 600년을 살아온 DNA가 있는 나로선 사실 버겁다.

운명이 사람의 힘으로 움직여지는 것이인지, 아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이려 하는 것은 헛된 일이고, 움직이는 것에 손대지 않는다면 태만이다. 하지만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운명과, 운명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인생이 확실히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망설임이 솟았다. 어느 쪽이나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에서이기는 하지만, 이에야스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서 두 개의 비중을 재어보았다. 운명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면 그것은 하나의 체념으로 통하고, 자신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면 그것은 남보기에 경거망동으로 비친다.
그러나 비록 세상의 눈에 어떻게 비치든 인간에게는 자신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움직일 수밖에 없는 빠듯한 하나의 선이 있는 것 같았다. 통해도 좋고 통하지 않아도 좋다. 여기서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가보는 것이다.
- 대망. 3권. P 123.

LG 그만 둘 때, 큰 의문이 있었다.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확실히 적응하는 것이 옳은가. 그 때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가 좋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지만, 뭐가 답일까 궁금하였다. 지금에 와서 답하라면 그만 두어도 좋고, 그만 두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드러난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떠오르게 된 흐름은 읽어야 하고 그걸 따라야 할 것 같다.

일전에 사업을 벌리게 된 동기를 봤었다. 어쩌면 그건 사업을 하지 않으면 더 달성하기가 쉬운 마음 상태일 수가 있다. 회사가 왠만큼 손익을 맞추고 있다면 아마 한달쯤 그냥 어디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마음을 달리 먹으니 그것도 도피이고 사무실에 앉아 편안하지 않을 이유도 별로 없었다. 이런 기분이니 딱히 새로 일 벌리고 싶지도 않고 AS 해야 될 거나 하고 당장 처리할 일만 하니까 정말 여유가 있었다. 인생의 큰 방향 전환이 생겨 접어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접을 길이 생길테고, 해야 한다면 또 그에 상응하는 기회가 올테니까 생각/판단/추측 하지 않고 그냥 살았다.

그러다 어떤 힘이 나를 이길로 끌어나 하고 궁금해 하던 차에 또 답을 얻었다. 5살이나 6살 때 마냥 그냥 아무생각없이 놀고 싶었던 것이다. 어릴 때 외갓집 동네 산에 산불을 낸 적이 있었는데, 큰일 났다고 한번 울어 제꼈다가 다시 깨니까 상황이 종료 되고, 다시 리셋한 기분을 또 놀았다. 좀 심한 예이긴 한데, 옳거나 그르거나 해야하거나 말아야하거나에 상관없이 난 그냥 즐겁게 놀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노는 일들을 뒷받침해주는 무한하면서 어디에나 있는 사랑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Posted by Ch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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